*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의 주요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좀비의 부산행이 창궐을 낳았다. 지난 1월25일 세계 190개국에 동시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킹덤>(시즌1 6부작)의 시작이다. 늙은 왕(윤세웅)이 사망하자 권력의 실세인 영의정 조학주(류승룡)와 그의 딸 중전(김혜준)은 세자 이창(주지훈)이 왕위를 계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삭인 중전이 해산할 때까지 왕의 죽음을 미루기로 한다.
모든 이야기에서 그렇듯 죽은 자를 살려내는 행위는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부른다. 생사초로 인해 되살아난 왕에게 물려 죽은 단이(김현빈)의 시신은 동래(부산의 옛 지명)로 돌아와 굶주린 백성들의 한 끼 식량이 되고 사슴고기인 줄 알고 인육을 먹은 이들은 ‘생사역’이라 불리는 좀비로 변해 사람들을 공격한다.
식욕만 남은 좀비 이야기
SBS 드라마 <싸인> tvN 드라마 <시그널> 등 다수의 사회파 스릴러물을 히트시킨 김은희 작가는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에 실린 “이름 모를 괴질로 수만 명이 숨졌다”는 대목에서 착안해 식욕만 남은 좀비 이야기를 만들었다. 한국인이라면 더 흥미롭게 해석할 수 있는 지점도 있다. 단 한 척 남은 배로 도망치며 백성을 버리는 양반들의 행태는 선조와 이승만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고 죽어도 죽지 못하는 왕의 존재는 수년째 의식이 없는 상태로 입원 중인 재벌 총수를 떠올리게도 한다.
그렇다면 누가 대를 이을 것인가. 모든 문제는 아들에게서 시작되고 아들 때문에 커진다. 왕의 외아들이지만 후궁에게서 태어난 이창은 입지가 위태롭고 그를 치려다 외아들 조범일(정석원)을 잃은 조학주는 복수심에 불타올라 중전을 겁박한다. “아들을 낳거라. 반드시 아들이어야 한다. 그것이 네가 할 일이다!”
그러나 아버지 못지않은 야심가인 중전은 자신의 효용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 유산 사실을 숨긴 채 대신 아들을 낳아줄 무연고 임부들을 불러모은다. 모처럼 만난 산해진미를 즐기는 이들에게 “많이 먹고 아들 낳으시구려”라는 산파의 덕담은 그래서 저주에 가깝다. 딸을 낳으면 죽는다. 하지만 아들을 낳아도 죽을 것이다.
김은희 작가는 “조선의 여성 중 가장 높은 지위를 가진 중전조차 결국 자기가 낳은 아들이 있어야만 신분이 공고해질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들이란 무엇인가. 동래의 노마님(허진)은 피란 가는 조운선에 생사역이 된 아들의 시신을 몰래 실었다가 역병의 확산에 일조한다. 시신을 불태우거나 목을 잘라야 전염을 막을 수 있다는 말에 대노한 그의 반응은 신체 훼손이 금지되었던 조선이라는 시대 유교적 전통을 지키던 사대부라는 계급 인간이지만 인간이 아닌 좀비라는 소재가 만났을 때의 흥미로운 충돌을 대표한다.
거기에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의 특성을 활용해 유교적 가치관과 남아선호사상이 물씬 배어나는 대사를 영어 자막으로 읽어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거늘 삼대독자 귀하디귀한 내 아들 시신에 털끝만큼이라도 손댔다가는 가만두지 않을 걸세!” ( Never desecrate the body you got from your parents. My precious son is our family’s only son for three generations. If you so much as lay a finger on his body you will have to answer to me! )”
시즌2에서 풀어야 할 숙제
물론 <킹덤>에서 아들 중의 아들은 이창이다. 혈통은 서출이지만 이야기의 적통인 그는 불안과 오만 열등감과 자부심이 뒤섞인 매력을 지닌 인물이고 궁 밖으로 나와 시련을 겪으며 성장한다. 이창의 영웅성은 살아남아(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절박함과도 연결된다. 그가 좀비 떼로부터 늙고 병든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레를 들어올리며 “난 다르다! 난 이들을 버리고 간 이들과도 다르고 해원 조씨와도 다르다! 난 절대로 이들을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포효하듯 다짐하는 대목은 자신이 성군의 재목임을 증명받고 싶어 하는 인정 투쟁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그의 기대에 부응하여 감사하며 머리를 조아린다. 역시 백성을 아끼는 이창에게 감복해 그를 따르는 의녀 서비(배두나)는 기대보다 비중이 적고 총잡이 영신(김성규)에 비해서도 캐릭터 자체의 존재감이나 매력이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나마 비중 있는 두 여성 캐릭터가 한 번도 만난 적 없어 ‘벡델 테스트’(여성 만화가 앨리슨 벡델이 남성 중심 영화가 얼마나 많은지 계량하기 위해 만든 영화 성평등 테스트)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는 아쉬움과 이들의 활용은 시즌2에서 풀어야 할 숙제다.
세계시장을 겨냥한 프로젝트답게 회당 제작비가 15억~20억원에 이르는 <킹덤>의 영상은 넘치도록 화려하다. 아찔하게 아름다운 풍광 사이로 아귀 떼 같은 좀비들이 질주하고 단풍이 곱게 물들어 비친 경복궁 연못 안에는 고요히 시체들이 쌓여간다. <부산행>(2016)을 잇는 ‘ K- 좀비물’로 주목받은 <킹덤>은 세계적인 영화와 TV 정보 사이트인 IMDB ( Internet Movie Database )에서 ‘가장 인기 있는 TV 쇼’ 부문 13위에 오를 만큼 좋은 반응을 얻었다.
조학주의 명으로 경상도가 봉쇄되고 이창과 안현 대감(허준호)이 좀비들로부터 상주를 지키려 애쓰고 서비가 생사초를 발견함과 동시에 위기에 빠지는 시즌1의 마지막은 다소 급하게 마무리된 감이 있지만 이미 촬영이 시작된 시즌2를 궁금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3년 전 사건의 비밀 조학주와 안현의 관계 이창의 행로를 밀고하는 자의 정체 영신의 과거사 등 다양한 복선들이 기대를 불러일으킨다.
죽음으로 이어지는 노동
그러나 이 모든 성취에 앞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이야기는 1회가 끝난 직후 뜨는 한 줄의 문구다. “<킹덤>의 배우와 스태프는 ‘故 고근희 님’을 기억합니다.” 33살 미술 스태프였던 그는 1월16일 뇌동맥류 파열로 사망했다. 전국영화산업노조는 고인의 사망 원인을 과로사로 보고 영화·방송 제작 현장의 개선을 촉구했다. 그야말로 ‘헬조선’인 <킹덤> 속 시대로부터 수백 년이 흐른 지금 2019년에도 일하다 사람이 죽고 있다. 살아남고 살아가기 위한 노동이 죽음으로 이어진다...........
출처 :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36&aid=0000041157